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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다대포 몰운대 [沒雲臺]와 객사 이야기

몰운대 :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명승지.

 

부산광역시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6km 떨어진, 다대곶 동편에 있다. 다대곶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워 일본과 교역하는 주요 해상로로 이용되었으며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 충장공() 정운()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과 운()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1983년 북한의 무장간첩선이 이곳으로 침투하다 괴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개설

몰운대()의 남쪽 끝은 파도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해식동()이 발달되어 있고, 배후인 육지 쪽에는 수려한 모래 해안인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다. 몰운대는 예로부터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출렁거리는 파도와 수려한 모래밭 등 빼어난 경승지로 이름나 있을 뿐 아니라,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무인도가 몰운대 주위에 산재해 있어 풍경이 한층 더 돋보인다.

명칭 유래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섬 전체가 안개와 구름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몰운대의 지형은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 환경

몰운대는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로 불리던 섬이었으나,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토사의 퇴적으로 다대포와 연결된 전형적인 육계도()[목섬]이다. 몰운대에서 낙동강 칠백 리 물길을 따라 흘러내린 모래와 흙으로 강과 바다 사이에 형성된 삼각주인 대마등과 장자도, 그리고 부산의 제일 끝에 해당하는 남형제도와 북형제도, 나무섬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바라보인다. 몰운대는 부드럽고 아기자기하여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며, 해안 자갈 마당과 어우러진 해안선은 부드럽고 완만한 편이다.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일몰 광경


몰운대의 빼어난 자연 경관은 다대 팔경() 중 제1 경인 ‘몰운관해()’로 몰운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을 말한다. 또 하나의 제1 경은 ‘화손낙조()’로 몰운대 동쪽 끝자락 화손대()에 깔려 드는 저녁노을의 빼어난 아름다운 경치이다. 지금도 개발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군사 작전 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97년 이후 출입이 허용되었다. 맑은 날이면 수평선 저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동래부사 이춘원()의 시가 『동래부지(, 1740)』 제영잡저()조에 전한다. 그 내용을 보면, “호탕한 바람과 파도는 천만 리에 펼쳐 있고/ 흰 구름이 하늘을 덮으니 외로운 몰운대는 사라지고/ 동쪽 하늘 둥근 아침 해는/ 늘 선인()이 학을 타고 오는 것만 같구나[ ]”라고 하였다. 또한 통신사(使) 조엄()은 『해사 일기()』[1763]에서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한 뒤,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답고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라며 절경에 감탄하였다 한다.

몰운대 시비

1740년(영조 16) 편찬된 『동래부지』 고적조에 “몰운대는 다대포 남쪽 1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진재() 김윤겸()[1711~1775]이 1770년(영조 46) 소촌도 찰방()에 임용되어 진주를 중심으로 한 인근을 유람하고 그린 『진재 김윤겸필 영남기행화첩()』[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56호]에 실려 있는 몰운대 그림은 당시 실제 경치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현황

몰운대에는 다대포 객사()[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호]와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에서 선봉에 서서 끝까지 싸우다가 순절한 녹도 만호 정운() 장군을 기리는 정운 순의비()[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0호]가 세워져 있다. 소재지 주소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144번지 일원이며,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약 49만 2300㎡이다.

 

다대포 객사 []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다대첨절제사영 소속 객사.

개설

다대포 객사()는 수령이 부임할 때 의식을 치르고,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를 보관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망배()[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절하는 것]를 드리던 곳이며,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었던 조선 후기 지방 관청 건물이다. 조선 시대에 다대포는 군사적 요충이었으며, 이에 다대진에는 정3품의 당상관이 근무를 하였다.

 

위치

다대포 객사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몰운대() 내에 위치한다.

변천

다대포 객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대진이 설치된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된다. 건립 이후 여러 차례 건물을 고쳤다가 1825년(순조 25)에 마지막으로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다대포 객사는 현 다대초등학교 이전의 다대사립실용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다. 1970년 현재의 몰운대로 옮겨 복원하였으며, 1992년에 단청 공사를 실시하였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벽체 없이 기둥만 남아 있어서 마치 누각 건물처럼 보인다. 객사 건물에는 가운데 정당()[가운데 건물]과 좌우에 날개처럼 익실()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정당 외에 좌우에 익실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황

현재 다대포 객사의 관리자는 부산광역시 사하구이다. 1972년 6월 26일에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다대포 객사는 조선 후기 다대진의 군사적 위상을 확인시켜 주는 관아 건축물이다. 다대진의 객사를 원래의 자리인 다대초등학교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교육적인 효과가 좀 더 컸을 것이다.

 

◆해안누리길 몰운대길(부산 사하구)

부산권역에서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다. 해안누리길 몰운대길은 차분한 겨울 바다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다대포해수욕장역에서 시작된다. 길은 부산에서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몰운대 유원지로 연결된다. 자연친화적 해안 절벽의 길은 총 4.2km의 코스로 2시간이면 넉넉히 둘러볼 수 있어 크게 부담도 없다.


◇코스경로 : 노을정 휴게소(낙조대)~꿈의 낙조 분수대~다대포 해수욕장 입구~몰운대 입구~몰운대 객사~자갈마당~전망대~화손대~몰운대 입구(총 4.2km)

노을정
노을정 주변 해변 모래밭
낙조분수대
낙조분수대
낙조분수대
저 멀리 몰운대 입구가 보여요
몰운대 입구 표지석
몰운대 입구 산책로
몰운대 객사
화손대
물운대 입구 방향
몰운대 입구